얼마 전 참여 불교재가 연대가 수입의3%, 시간의 3%, 능력의 3%를 나누는 회향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이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하루 100원씩 매일 저축해 이웃에게 나누고, 재가연대 지도자들이 유산을 사회에 기증하는 서약 운동도 펼치고 있다.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종교, 도덕적으로 사회적 표준이 미달하는 종교는 대중으로부터 엄혹히 비판받고 외면당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며 자기 혁신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일구는 선구자가 되고자 나누는 회향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니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낙후된 정치가 경제성장을 어둡게 하면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쌀과 고추, 인삼등 농산물을 훔쳐가고, 다리의 철재 울타리와 명판을 뜯어 가는가 하면, 전깃줄 까지 끊어 가는 좀도둑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돈을 만드는 일이라면 이혼도 불사하고, 불법도 불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인천 송도의 한 오피스텔 분양시에는 며칠씩 노숙하며 분양을 받으려고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 일도 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되파는 것은 로또보다 본 벌 확률이 높은 일이니 길에서 며칠간 노숙을 하며 분양 신청하는 것은 엄연한 경체 활동이라는 시민들의 말에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소식들 가운데 불교재가자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나누는 회향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니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장주(莊周)라는 사람이 집이 가난하여 위(魏)나라에 가서 식량을 꾸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후(問候)가 이렇게 핑계를 댔다.
“우리 백성들이 곡식을 바쳐 오면 그때 가져다 드리지요.”
이 말에 장자가 이렇게 말했다.
“ 방금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 길가 소 발자국이 패인 곳에 물이 고여 붕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붕어는 나를 보자 ‘제가 날아날 수 있을까요?”하고 탄식하며 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너를 위해 남쪽 초왕(楚王)을 만나 강수(江水)와 회수(淮水)의 물길을 터서 너에게로 끌어들이도록 허락을 받아 주겠노라’고 하였지요.
그러자 붕어가 ‘지금 내 생명은 쟁반 옹기 속에 있소, 그런데도 그대가 나를 위해 초왕을 만나 거창하게 강수, 회수의 물을 끌어대 주겠다니, 그 때 그대는 마른 생선가게에 가서나 나를 찾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가난하여 곡식을 꾸려 왔는데 백성이 나라에 곡식을 바쳐야 제개 주겠다하니, 그때 그대는 날품팔이꾼의 시장에서나 나를 찾으시오.”
이와 비슷한 예화가 또 하나 있다.
장록(張祿)은 비록 문지기였지만 아주 본받을 만한 지혜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 맹상군(孟嘗君)을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옷을 항상 새것으로 낡지 않게 하고, 창고가 항상 차서 비는 법이 없도록 하는 방법아 있었는데, 귀하는 이를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맹상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옷을 새것처럼하려면 잘 손질하면 되고, 창고가 항상 차서 비지 않게 하려면 부유하면 되지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요?”
이에 장록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원컨대 귀하께서 귀하신 신분이라면 어진이를 등용하시고, 귀하가 부자라고 느끼신다면 가난한 이에게 베푸십시오. 이렇게 하면 항상 새옷처럼 낡지 않게 입으실 수 있고, 창고가 차서 비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에 맹상군은 일리가 있는 말인 데다가 그 뜻에 즐거움이 느껴져, 그 이튿날 사람을 시켜 장록에게 황금 1백근과 고급 옷감을 가져다주도록 했다. 그러나 장록은 이를 사양하며 받지 아니 하였다.
뒤에 맹상군이 장록을 만났을 때 물었다.
“지난날 선생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기를 ‘옷을 항상 새것으로 낡지도 않게 하고, 창고가 항상 가득 차서 비는 법이 없도록 하는 방법을 아는가’ 하고 물었지요. 저는 이에 가르침을 기쁘게 여겨서 그 보답으로 황금 1백근과 옷감을 보내어 우선 내 집 문안의 가난한 자부터 도우려 하였더니,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사양하며 받지 않으셨습니까?
장록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귀하께서 장차 귀하의 돈을 파내주고 귀하의 창고에서 곡식을 풀어 우리 선배들을 도와주려 한다면, 옷이 다 닳고 신발이 모두 헤어지도록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 때는 어느 겨를에 새 옷이 낡지도 않게, 가득 찬 창고가 비지도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두 가지 일화에서 베푼다는 것은 그 시기를 적당히 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베푸는 것이 적당한 시기라는 것, 또한 지혜롭게 베풀지 않으면 베풀 것이 없을 때 정말 베풂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베풂도 지혜로움이 필요하는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베푸는 마음은 인간 덕성에서 가장 근본이 된다. 부처님께서도 피안으로 가는 지혜로 육바라밀을 제시하셨을 때 보시바라밀을 최우선으로 두셨다. 베푸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불자에게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수행인 것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떤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또한 자신의 한계를 얼마나 뛰어 넘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베풀고 사는 수행자인가에서 드러난다.
나눔의 회향 운동에 동참하는 재가자들이 모두 돈이 많거나 가진 것이 많아 나누겠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개중에는 그 동안 쌓은 복업으로 누리고 산 넉넉함을 나누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어려운 사회 속에 일터를 꾸려나가고 살림을 겨우겨우 하는 이들일 것이다. 가진 게 많아서 나누겠다는 사람이나 가진 게 없어도 나누며 살겠다는 사람들 모두가 이 세상을 부모 된 마음으로 바라보고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참으로 거룩하고, 참으로 불향을 피우는 진짜 불자다운 이들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눔의 회향 운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신적으로 발전시키고, 보살의 길을 제시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자비 실천운동이다.
이 운동이 일부 부자들의 캠페인으로 그치지 말고 베푸는 것으로 살림이 커 가고, 베푸는 사람들로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베푸는 공덕으로 이 나라가 발전되길 축원한다.